12화 — 끝나는 자리
"잘 외우는 편입니다."
로자린드는 내가 그린 술식 옆에 펜을 놓았다.
"외우는 것과 흐르게 하는 것은 다른 일이지."
"예. 그래서 두 번 다 다쳤습니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지금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나?"
나는 잠깐 망설인 뒤 대답했다.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판단하지 못하는 부분도 남겠군."
거짓말을 골라내겠다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넘어가겠다는 말도 아니었다.
로자린드는 종이를 돌려줬다.
"자네 몸을 검사하는 것과 이 모양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부터 나누지. 담당 직원이 괜찮다고 할 때까지 시전은 없네. 그 뒤에도 입회하에 한 번씩. 학년주임에게는 내가 요청하겠어."
"실기 제한은요?"
"검사 허가를 실기 허가로 읽지는 말게."
읽어볼 생각은 있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날 오후, 루시아에게 기록을 건넸다.
연무장 바깥 벤치였다. 그녀는 첫 줄부터 읽다가 종이를 뒤집었다.
"끝?"
"뒷면은 비어 있습니다."
"고리 무게는?"
"재지 못했습니다."
"손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었는데."
나는 손가락 두 개를 벌렸다가 조금 좁혔다.
"마지막에는 이 정도입니다.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루시아는 펜을 내밀었다.
나는 거리 옆에 ‘추정’을 붙였다.
그녀가 다음 줄을 가리켰다.
정지 뒤 몸통 낙하. 하겐의 개입으로 압박 회피.
"이건 잘 썼네."
처음 듣는 평가였다.
나는 잠깐 그 문장을 다시 봤다. 잘한 부분을 찾으라면 거기부터 고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법이 끝났는데 네가 살아 있을지는 따로 봐야 하니까."
루시아는 종이를 돌려주고 일어났다.
"잠깐 들어와."
빈 연무장에 물잔 하나가 놓였다.
루시아는 잔 위로 손을 폈다.
수면이 손가락 한 마디만큼 올라오더니 납작하게 펴졌다. 얇은 물막 너머로 그녀의 눈이 보였다.
1서클 수계. 얇은 수막.
초급 실습에서 잉크가 튀는 것을 막거나, 작은 불씨가 옮겨붙지 않게 하는 마법이었다. 전투 영상에서는 거의 본 적이 없었다.
나는 펜을 꺼냈다.
"물부터 만들어낸 건 아닙니다."
"응. 잔에 있던 거야."
물이 올라온 길은 보였다. 술식도 일부러 천천히 이어졌다.
나는 첫 줄을 따라가다 마지막에서 멈췄다.
막을 유지하는 고리가 닫히지 않았다.
물이 떨어졌다.
루시아는 빈 손을 폈다.
"어디까지 봤어?"
"유지하기 전에 끊으셨습니다."
"이번에는 끝까지 봐."
물막이 다시 올라왔다. 이번에는 둥글게 가장자리가 연결됐다. 루시아는 작게 접은 종이를 집어 막에 던졌다.
젖은 종이가 물을 뚫고 그녀의 발 앞에 떨어졌다.
나는 시선을 내렸다.
게임에서는 이런 마법에 방어력 숫자가 붙었다. 젖은 종이 한 장이 그 숫자보다 많은 걸 설명했다.
"찌르는 걸 막는 용도로는 쓰지 마."
"예."
"물 없으면 이것부터 못 하고."
"기억하겠습니다."
그녀는 막의 한쪽을 열었다. 물이 잔으로 흘러들어갔다.
처음처럼 유지 전에 끊긴 것과, 완성한 뒤 풀린 것.
백지에 서로 다른 끝이 남았다.
나는 그것들을 나란히 옮겨 적었다. 칼날이 뚫고 들어온 뒤 방어 주문을 더 세게 미는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 내 몸으로는 그다음 동작이 없을 것이다.
"제 경우에는 오래 붙잡지 않는 게 중요하군요."
"그걸로 안 아플지는 몰라."
"덜 다칠 조건부터 확인하겠습니다."
루시아가 물잔을 들었다.
"네가 필요한 건 그다음에 걸어 나오는 거잖아."
잔에 남은 물이 조용히 흔들렸다.
나는 수첩 맨 위에 적어둔 말을 떠올렸다.
시전 뒤 움직일 힘을 남겨둘 것.
그 문장을 술식 옆으로 옮겼다.
연무장을 나가려는데 루시아가 나를 불렀다.
"그림, 다시 보여줘."
나는 수첩을 폈다.
그녀는 공급부 옆에 그려진 짧은 선을 봤다.
"이건 왜 있어?"
"처음 시연하실 때 보였습니다. 두 번째에는 없어서 따로 그렸습니다."
루시아가 손을 내밀었다. 수첩을 받아 한참 보더니 그 선 아래에 작게 점을 찍었다.
"여기서 조금 샜어."
나는 얼굴을 들었다.
"교수님한테 보낼 관측표를 쓰고 있는데, 밖에서 보이는 건 적을 사람이 없었거든."
그녀가 수첩을 돌려줬다.
"금요일에 시간 돼?"
"근로가 오후 세 시에 끝납니다."
"네 시. 내가 하는 걸 적어줘. 가르치는 건 그 뒤에 십 분."
나는 바로 대답하려다 내 시간표를 확인했다. 참관 수업과 겹치지 않았다.
"가능합니다."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쓰고."
"말씀드려도 됩니까?"
"그러려고 부르는 건데."
루시아는 이상한 질문을 들었다는 얼굴이었다.
나는 수첩을 덮었다.
수석 옆에서 기초 마법을 구걸할 계획이었다. 돌아가는 길에는 내가 해야 할 일이 하나 생겨 있었다.
운이 좋아서 받은 자리와는 달랐다. 다음 금요일에 내가 빈 종이를 내밀면 끝날 자리였다.
그녀가 뒤에서 덧붙였다.
"그리고 오늘 본 걸 방에서 해보지는 마."
"교수님과 검사 일정을 잡을 예정입니다."
"그럼 됐어."
나는 문 앞에서 한 번 돌아봤다.
루시아는 아까 던진 종이를 주워 펴고 있었다. 구겨진 곳을 손톱으로 누르다가 잘 펴지지 않자 미간을 좁혔다.
나는 가방에서 빈 종이 한 장을 꺼내 놓았다.
그녀가 쳐다봤다.
"다음 시연용입니다."
루시아는 젖은 종이와 마른 종이를 번갈아 봤다.
"……고마워."
그날 백지에는 완성된 수계 술식 하나가 더 남았다.
수첩에는 처음으로 다음 약속이 적혔다.
— 12화 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