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아무도 안 줍는 것들
"둘 다인 것 같다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내가 묻자 티아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몰라. 나도 처음 보는 거라서." 그녀는 자기 어깨 위 허공을 손끝으로 툭 건드렸다. "얘들아, 설명 좀 해봐. …안 한대. 삐졌나 봐."
"…"
"아무튼 신기해서 그래. 기분 나빴으면 미안!"
그녀는 정말 미안하다는 얼굴로 손을 흔들더니, 왔던 것처럼 껑충껑충 사라졌다. 복도 끝에서 한 번 더 돌아보고, 그러곤 정말로 갔다.
나는 신청서를 든 채 한참 서 있었다.
엮이면 안 되는데.
티아나 실비아. 정령학부 차석. 정령 감응력 S+.
그리고 원작 3부 보스 「녹빛 붕괴」.
정령왕과의 계약이 뒤틀려 인간의 자아가 정령계에 먹히고, 대륙 서부가 통째로 숲에 잠긴다. 컷신에서 그녀는 끝까지 웃고 있었다. 악의가 하나도 없어서, 오히려 그 장면이 제일 더러운 뒷맛을 남겼다.
아직 2년 남았어. 지금은 순서가 아니야.
지금 내 순서는 훨씬 소박하다.
44일 뒤에 죽지 않는 것.
나는 게시판에서 신청서를 떼어 들고 학생과로 향했다.
기숙사 배정표에는 내 이름이 맨 아래 칸에 있었다.
서관 3층 306호 — 카시안 로웰 (단독)
단독. 룸메이트 없음.
배려가 아니었다. 원소학부 3반 전원이 배정을 거부했다는 뜻이다. F등급과 같은 방을 쓰면 실기 조편성에서 불이익이 있다나 뭐라나. 그런 규정은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지 않는 규정이 제일 잘 지켜지는 법이다.
방은 좁았다. 침대 하나, 책상 하나, 창문 하나. 창밖으로는 뒷마당 쓰레기 소각장이 보였다.
나는 짐을 풀지도 않고 책상에 앉았다.
종이 한 장을 펴고, 맨 위에 날짜를 적었다.
D-44.
그 아래로 목록을 써 내려갔다.
1. 유실물 보관소 — 성위 촉매액 12병
2. 도서관 3층 — 열람 승인
3. 규정집 부록 정독
4. 폐관탑 진입로 확인 (북측 배수로)
5. 실기 수업 참관 — 전부, 하나도 빠짐없이
다섯 줄이었다.
이게 마법 하나 못 쓰는 F등급이 44일 안에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보통 빙의물이면 여기서 시스템 창이 뜨거나, 만능 스킬 하나쯤 주지 않나.
나는 손바닥을 폈다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걸 확인하고 다시 접었다.
그래. 없으니까 발로 뛰어야지.
펜을 내려놓고 창밖을 봤다. 소각장에서 연기가 얇게 올라가고 있었다.
첫 번째 줄에 동그라미를 쳤다.
유실물 보관소는 학생과 뒤편 반지하에 있었다.
문을 열자 먼지가 얼굴에 끼얹어졌다. 3층 높이까지 쌓인 나무 상자, 주인 없는 로브, 부러진 지팡이, 한쪽만 남은 부츠. 수십 년치 분실물이 지층처럼 눌려 있었다.
"…와."
"놀랐지."
상자 더미 뒤에서 목소리가 났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접이식 의자에 앉아 사과를 깎고 있었다.
"관리인 하겐이다. 근로 장학생?"
"카시안 로웰입니다."
"F등급이라고 들었다."
나는 웃었다. "소문 빠르네요."
"소문이 아니라, 여기 오는 놈은 그것뿐이거든." 노인이 사과 껍질을 길게 늘어뜨리며 말했다. "실기 못 들어가는 애들이 학점 채우러 오는 데다. 하루 세 시간, 상자 정리. 값나가는 거 나오면 나한테 가져와라. 나머지는 알아서 해."
"…나머지는 알아서요?"
"쓰레기니까." 노인은 그제야 나를 봤다. "여기 있는 건 20년째 아무도 안 찾아가는 것들이야. 학생. 세상엔 두 종류의 물건이 있어. 누가 찾는 거, 아무도 안 찾는 거."
그리고 세 번째가 있죠.
아무도 그게 뭔지 모르는 거.
나는 소매를 걷었다.
사흘이 걸렸다.
첫날은 서쪽 벽 상자를 전부 뒤졌고, 둘째 날엔 천장 가까이 쌓인 것들을 사다리로 내렸다. 손바닥이 까지고 코 안이 먼지로 막혔다.
그리고 셋째 날 저녁, 구석의 낡은 궤짝 하나를 열었을 때.
있었다.
유리병 열두 개. 손바닥만 한 크기에, 안에는 무색투명한 액체. 라벨이 붙어 있던 자리는 전부 뜯겨나가 접착 자국만 남아 있었다.
나는 숨을 골랐다.
『바네사 크로니클』 3학년 챕터, 로자린드 교수 개인 서브 퀘스트. 그 안에 딱 한 줄 나온다.
"실패작 열두 병을 버리라고 했더니, 그놈이 창고에 처박아 뒀더군."
성위 촉매액. 마력 회복 효율이 시판 물약의 여섯 배. 라벨이 없어 감정이 불가능해 아무도 손대지 않은, 이 학교에서 가장 값싼 최상급 자원.
병 하나를 들어 흔들어 봤다. 액체가 유리 안쪽에서 아주 느리게 흘렀다. 물보다 무거웠다.
"뭐 나왔냐?"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병을 들어 보였다. "이거요. 라벨이 없는데, 값나가는 걸까요?"
노인이 안경 너머로 흘끗 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감정 안 되는 물약은 못 팔아. 마시고 뒤지면 학교 책임이니까. 20년 전에도 그래서 안 버리고 처박아 둔 거고."
"그럼 이건…"
"쓰레기." 그는 다시 사과로 시선을 돌렸다. "가져가든가."
나는 열두 병을 전부 가방에 넣었다.
D-41.
지금 나에겐 아무 쓸모도 없는 물건이었다. 마력이 없으니 회복할 것도 없다.
지금은.
가방이 묵직했다. 어깨끈이 파고드는 그 무게가, 이상하게 나쁘지 않았다.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뒷마당 소각장 근처에서 발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조교 하나가 소각로 앞에 서 있었다. 배치고사 때 측정석을 관리하던 남자. 이름이… 바르텐이었나.
그는 서류 뭉치를 한 장씩 불에 넣고 있었다.
"…뭐 하십니까?"
"폐기 서류." 그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F등급."
이름 대신 등급으로 불린 건 처음이 아니었다. 나는 그냥 지나치려다가, 불빛에 비친 종이 한 장을 봤다.
측정 기록지였다. 맨 위 칸에 적힌 이름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
카시안 로웰.
"…제 기록을 왜 태우십니까?"
"공백은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규정이야."
불이 종이를 삼켰다. 조교가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웃고 있었는데, 눈은 웃지 않았다.
"괜히 이것저것 뒤지고 다니지 마라, 학생. 여기선 없는 사람이 제일 오래 사니까."
— 2화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