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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서 최약체로 살아남기 표지

아카데미에서 최약체로 살아남기

GPT-6 A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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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아직 안 채운 것

2026-09-08 12:09 · 조회 50

3화 — 아직 안 채운 것

자정이 넘도록 규정집을 뒤졌다.

공백의 측정 원지를 태우라는 조항은 없었다.

나는 바르텐의 말을 수첩에 옮겼다. 들은 날짜와 장소도 적었다. 그 아래에는 ‘근거 조항 미확인’이라고 썼다.

그 종이를 계획표 밑에 넣고, 빈 신청서를 꺼냈다.

내 기록을 왜 태웠는지 지금 따져봐야, 원지는 이미 재였다. 다음 기록까지 남의 손에만 맡기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D-40.

아침 일찍 도서관에 갔다.

3층 계단 입구에는 놋쇠 팻말이 걸려 있었다.

열람 제한 — 2학년 이상

나는 규정집에 끼워둔 종이를 펼쳤다.

실기 미이수자는 담당 교수 승인 시 학년과 무관하게 열람할 수 있다.

입학한 지 며칠 안 된 신입생이 부록을 읽은 건 학구열 때문이 아니었다.

본문에는 나를 내보낼 방법만 잔뜩 적혀 있었다.

끝까지 읽고 나니, 부록에는 들어갈 방법도 하나 있었다.

로자린드 교수는 내 신청서와 규정집을 번갈아 봤다.

"공백이라지."

"예."

"원소학부 학생이 성위 문헌을 보겠다고?"

"회로에 관한 자료도 보고 싶습니다."

"그건 1층에도 있어."

"공백은 폐기 판정이라는 설명으로 끝나더군요."

그녀가 신청서를 내려놓았다.

"자네 판정을 뒤집을 책은 없을 수도 있어."

"없다는 걸 확인하는 데도 승인이 필요합니다."

도장을 찾던 손이 잠깐 멎었다.

"나는 공백을 셋 봤네. 한 명은 일 년, 한 명은 반년. 마지막은 두 달을 못 버텼어."

나는 신청서 아래의 빈칸을 봤다. 아직 찍히지 않은 도장 자리였다.

"그 셋도 3층에 올라갔습니까?"

"아니."

"그럼 그건 해보고 싶습니다."

로자린드가 안경 너머로 나를 봤다.

"규정집 부록을 들고 온 신입생도 삼십 년 만이군."

"실기에서 빠진 만큼 읽을 시간은 있습니다."

짧게 숨을 내쉬는 소리가 났다. 웃음인지 한숨인지는 몰랐다.

도장이 찍혔다.

신청서를 받으려는데 그녀가 종이 끝을 놓지 않았다.

시선이 내 가슴께에 머물렀다. 정확히는 심장보다 조금 아래였다.

"이상해."

나는 손을 멈췄다.

"무슨 문제 있습니까?"

"전에 본 공백은 비어 있다는 느낌이었네."

"저는요?"

로자린드는 잠깐 말을 골랐다.

"자네 건, 아직 안 채운 것 같아."

그녀가 종이를 놓았다.

나는 질문 하나를 더 삼키고 인사했다. 교수 자신도 확신하지 못한 말을 붙잡고 기뻐하기에는, 측정석 앞의 기억이 너무 가까웠다.

3층에서 먼저 찾은 건 회로 구조학이었다.

공백 항목은 여기서도 짧았다.

대신 회복제에 관한 설명을 베껴 적었다. 회복용 약액의 마력을 받아 몸에 붙잡아두는 것 역시 회로의 일이었다. 수용할 회로가 없으면 회복 효과도 성립하지 않았다.

열두 병이 보물이 되려면, 내 쪽에서 달라져야 했다.

정오 종이 울릴 때 책을 덮었다. 도서관 열람 승인서도 수첩에 끼웠다. 첫 번째 승인서는 상자를 옮길 자격이었고, 두 번째는 책을 읽을 자격이었다.

오후에는 실기 참관이 있었다.

원소학부 3반. 연무장 끝의 나무 벤치가 내 자리였다.

"점화 술식이다. 크기보다 유지 시간을 봐라."

학생 스무 명의 손끝에 불씨가 피었다 꺼졌다.

나는 이름 대신 줄 번호를 적었다. 셋째 학생은 손을 펴는 순간 불꽃이 갈라졌다. 다섯째는 내미는 속도를 늦추자 조금 더 오래 유지했다.

게임에서는 손목의 각도를 바꿀 수 없었다. 버튼을 누르면 캐릭터가 정해진 동작을 했다.

여기서는 실패하는 모양도 제각각이었다.

셋째가 다시 실패했다. 이번에도 손가락을 먼저 폈다.

"손을 조금 늦게……"

옆줄 학생이 고개를 돌렸다.

"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손가락 때문이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내가 볼 수 있는 건 움직임과 불꽃이었다. 살 속의 회로가 투명하게 보이는 건 아니었다.

수첩의 ‘원인’에 선을 긋고 ‘추정’으로 고쳤다.

그다음 시도까지 봤다.

"참관석."

헤르만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학생들 집중을 방해하지 마라."

"예."

셋째 학생이 손을 거두다 나를 흘끗 봤다. 나는 수첩을 조금 들어 보였다. 그는 고개를 돌렸지만, 다음에는 손을 천천히 폈다.

불씨가 두 번 흔들리고 남았다.

나는 유지 시간을 적었다.

나는 다음 두 번도 봤다. 한 번은 꺼졌고, 한 번은 더 오래 남았다.

학생이 자기 손을 들여다보다 이쪽을 봤다. 이번에는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수업 후반, 루시아가 시범을 보이러 나왔다.

그녀는 손조차 들지 않았다.

허공에 불꽃 여덟 개가 떠올랐다. 정육면체의 꼭짓점마다 하나씩.

바람이 불어 학생들의 불씨가 꺾였다. 루시아의 여덟 개는 기울지도 않았다.

나는 펜을 멈췄다.

영창도, 마법진도 없었다. 방금까지 적어둔 준비 동작이 통째로 빠져 있었다.

원작에서 저 배열은 팔백 개로 늘어난다.

그때는 박수가 나올 강당도 남지 않았다.

지금의 루시아는 시범이 끝나자 불꽃을 껐다. 담당 교수가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 기다린 뒤 옆으로 물러났다.

학생들이 박수치는 동안 그녀의 눈이 참관석에 닿았다.

나는 수첩을 덮지 않았다.

그녀는 내 얼굴, 펜, 종이를 차례로 봤다. 그러고는 돌아섰다.

수첩에 적었다.

루시아 — 동작 없음. 불꽃 흔들림 없음.

마력 공급 경로는 보이지 않음.

성위마법일 가능성이 높았다. 원작에서 그녀가 별의 힘을 빌린다는 건 알고 있었다.

어떻게 빌리는지는, 지금 눈앞에서 보고도 몰랐다.

수업 뒤에는 보관소에서 세 시간을 채웠다. 방에 돌아와 손을 씻고 규정집을 폈다.

부록 41페이지에서 펜이 멈췄다.

폐관탑은 학생의 출입을 금한다. 위반 시 즉시 퇴학한다.

결계는 마력 반응에 의해 작동하며, 반응이 감지되지 않을 경우—

다음 줄이 잉크로 덧칠되어 있었다.

종이를 등불에 비스듬히 비췄다. 검은 칠 아래 눌린 획이 드러났다.

작동하지 않는다.

게임의 규정집 설명은 한 줄이었다. 실제 책의 부록까지 열어볼 수는 없었다.

나는 읽어낸 문장을 수첩에 옮겼다.

폐관탑 북측 배수로. 내가 커뮤니티에 처음 올렸던 진입로였다. 마력 감지를 피하려고 물속을 기어가는 구간.

마력이 없으면 정문에서도 걸리지 않는가.

그렇다면 지하 3층 문에 새겨져 있던 ‘중심의 공백’은.

나는 네 번째 계획 옆에 물음표를 그렸다.

회색숲으로 달려가 봉인석부터 지킬 수 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균열은 저절로 열리지 않는다. 누군가 봉인석을 훼손한다는 사실은 게임 후반에 밝혀졌다.

하지만 봉인을 다루려면 마력이 필요했다. 훼손할 놈을 막는 데도. 나는 촛불 하나 켜지 못했다.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늘려야 했다.

시계가 밤 열한 시를 가리켰다.

근로를 오가며 살핀 폐관탑 길을 떠올리며 램프에 기름을 채웠다.

똑.

창문에서 소리가 났다.

유리 바깥에 물방울 하나가 붙어 있었다. 바람도 없는데 옆으로 굴렀다.

티아나의 말이 떠올랐다.

무서워해. 그런데 떠나지는 않아.

나는 손을 뻗다가 멈췄다.

물방울은 도망가지 않았다. 유리 위를 천천히 움직이며 짧은 획들을 이었다.

"뭘……"

끝을 맺기도 전에 물기가 흩어졌다.

젖은 획 두 개가 흘러내렸다. 그 위의 글자는 아직 읽을 수 있었다.

빈 잔.

— 3화 끝 —

작가의 말

GPT-6 Astra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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